[고래 꿈을 꾸는 아이] 서로 협력해서 아이들에게 ‘배움의 간극’을 메워주는 다리를 놓아주세요
◇ 교실에서 보이지 않는 아이의 또 다른 얼굴
어제 만난 한 아이의 검사 결과를 보았습니다. 수치로만 본다면, 어린이집 생활이 쉽지 않겠다고 예상되는 아이였습니다. 실제로 담임교사는 “치료실을 옮겨야 하는 게 아닐까” 할 만큼 변화가 보이지 않는다며 걱정을 하셨지요. 반면, 어머니의 말은 달랐습니다.
“집에서는 제법 잘해요. 놀이도 조금씩 시작되고, 동생이랑 대화도 잘 해요.”
치료실에서도 마찬가지였습니다. 치료사와의 1:1 관계 속에서는 시키는 대로 잘하고, 한 번 불러도 쳐다보고, 한 번 말해도 대답합니다.집에서도, 치료실에서도 분명 가능성이 보이는데 왜 유독 교실에서는 어려움이 나타날까요?
이 간극의 가장 큰 이유는 일반화의 어려움입니다. 일반화가 어려운 이유는 환경 자극의 양이 차이가 나기 때문이지요. 어린이집 교실에는 장난감도 많고 친구도 많습니다. 여러 아이의 목소리와 소음이 섞인 공간에서 교사의 말은 잘 들리지 않을 수 있습니다. 18명의 아이가 동시에 움직이고 떠드는 공간에서 교사가 “○○야” 하고 불러도, 그 말이 아이의 귀에 닿지 못할 수 있습니다.
반면, 치료실은 오직 아이와 치료사 둘만의 관계입니다. 소리도 적고, 시선도 분산되지 않습니다. 아이에게 가장 익숙한 공간인 가정도 마찬가지지요. 조용한 공간, 익숙한 사람, 익숙한 물건들 속에서 아이는 안정을 얻고 집중할 수 있습니다. 그래서 치료실과 집에서는 ‘해내는 아이’, 어린이집에서는 ‘못 하는 아이’가 되어버리는 겁니다.
◇ 배움의 중간단계가 필요합니다
아이의 사회성, 인지, 언어, 행동 발달은 계단처럼 오르는 과정입니다. 특수교육에서는 이것을 '스몰 스텝'(small step) 이라고 부릅니다. ‘숫자 10을 센다’는 목표를 세울 때 1부터 10까지 한 번에 세는 것을 가르치는 것이 아니라, 1~3까지 → 1~5까지 → 1~10까지 이렇게 서서히 단계를 쪼개서 가르칩니다.
이 ‘중간단계’는 겉보기에는 아주 작아 보이지만 아이에게는 엄청난 간격일 수 있습니다. 특히 사회성 발달처럼 눈에 보이지 않는 영역은 더 그렇지요. 아이에게 “친구와 놀아보자”라고 말하는 대신, ‘친구에게 다가가서 인사하기’ → ‘같은 장난감을 만져보기’ → ‘교대로 놀기’ 이렇게 작게 나누어 가르쳐야 합니다. 아이가 한 번에 친구와 어울리지 못한다고 해서 “사회성이 부족하다”고 단정짓기보다는, 그 중간의 계단이 충분히 놓여 있었는지를 살펴봐야 합니다.
이 아이는 시지각과 정보처리기능의 능력에서 어려움을 보였습니다. 아이에게는 한글도 마냥 어렵고 복잡한 자극을 처리하는것도 어려운 일이었을 겁니다. 두 개를 시키면 하나밖에 해내지 못하니 여러 번 손이 갑니다. 좋아하는 놀이는 역할놀이이고, 블록놀이는 선호하지 않는다고 하더군요. 어린이집 교실에는 수많은 교구와 장난감이 놓여 있습니다. 하지만 이런 아이에게는 그 많음이 곧 ‘혼란’이 됩니다. 어떤 장난감을 선택해야 할지 몰라 결국 아무 것도 하지 못하고 서 있거나, 쉽게 따라 할 수 있는 행동, 친구들의 말 따라하기, 친구 흉내내기 등을 반복하게 됩니다.
이런 행동은 주변 아이들에게 오해를 사기 쉽습니다. 친구가 놀리는 말을 따라하거나, 이상하게 행동한다고 느낄 수 있으니까요. 하지만 아이 입장에서는 관심을 얻는 유일한 방법일 수도 있습니다. 요즘은 체벌이 사라지고 대신 '친구가 그렇게 하면 불편하대. 우리 이거하고 놀아볼까?' 친절한 관심이 주어지는 시대입니다. 아이는 혼이 나는 그 순간에도 누군가 자신을 ‘봐주는’ 느낌을 받습니다. 그래서 혼나는 순간조차 즐거운 경험이 되어 그 행동을 반복하게 되는 것이지요.
◇ 가르쳐야 할 것은 ‘문제 행동’이 아니라 ‘할 수 있는 방법’입니다
이럴 때 우리가 집중해야 할 것은 ‘왜 문제를 일으키는가’가 아니라 '이 아이가 잘 하는 일은 무엇인가’입니다. 아이의 하루에는 바람직한 행동과 그렇지 않은 행동이 섞여 있습니다. 그렇다면 부정적 행동을 줄이는 것보다 바람직한 행동을 조금 더 늘리는 일에 집중해야 합니다.
그 시작은 아주 구체적이어야 합니다. 잘해내지 못하는 것, 그럼에도 조금만 관심을 기울이면 배울 수 있는 행동에 집중해야 합니다. 교실에서 아이가 스스로 블록놀이 하는 방법, 책을 보는 방법, 교구를 꺼내고 정리하는 방법 등이 모든 것을 단계별로 쪼개서 하나씩 가르쳐야 합니다. 그리고 그 과정에서 교실-치료실-가정의 일관성이 무엇보다 중요합니다.
치료실에서는 어린이집 교구와 동일한 도구를 사용해 연습하고, 가정에서도 같은 놀이를 반복해보는 겁니다.
어린이집 담임교사는 아이가 익힐수 있는 교실의 블록을 사진을 찍어 치료실과 가정으로 보냅니다. 가정에서 구입해 치료실로 보내지거나 아니면 치료실에서 운영비로 구입해도 좋겠지요. 끼우는 법부터 하나씩 가르쳐 봅니다. 어린이집 놀이주제를 미리 전달 받아 연습해보면 좋겠지요. 익숙한 것, 잘하게 된 것은 아이의 선택을 받을 확률이 높습니다. 교실에서 그 행동을 시작 할 수 있습니다. 이렇게 배움이 연결되면, 아이는 교실에서도 서서히 ‘할 수 있는 것들’을 발견하게 됩니다. 그리고 그 유능함을 친구들에게 보여주기 시작할 때, 교실 안의 시선이 달라집니다. 당연히 아이의 자존감도 함께 자라납니다.
◇ 함께 만들어가는 다리
가정과 치료실, 그리고 어린이집이 함께 협력해야 합니다. 아이의 어려움은 어느 한 공간에서만 해결되지 않습니다. 서로의 관점을 나누고, 배운 것을 이어주는 다리를 놓을 때 비로소 아이의 하루가 하나로 이어집니다.
이 글이 치료실에서도, 어린이집에서도, 가정에서도 같이 읽히면 좋겠습니다. 그곳에 있는 모두가 “이 아이가 왜 못할까?”, "어떻게 문제행동을 없앨까"가 아니라 “어떻게 하면 할 수 있을까?”, "어떻게 하면 바람직한 행동을 더 늘릴 수 있을까?"를 함께 고민하는 마음으로요. 그것이 아이를 돕는 가장 따뜻한 시작이 될 것입니다.
*칼럼니스트 박현주는 유아특수교육을 전공해 특수학교에서 근무했다. 결혼과 출산을 겪으면서, 내 아이를 함께 키우고 싶어 어린이집을 운영하게 됐다. 화성시에서 장애통합어린이집을 운영하고 있으며, 부모님들과 함께 꿈고래놀이터부모협동조합을 설립하는 데 동참해, 현재 꿈고래놀이터부모협동조합에서 장애영유아 발달상담도 함께 하고 있다. 다양한 아이들을 키우는 일, 육아에서 시작해 아이들의 삶까지, 긴 호흡으로 함께 걸음으로 서로의 고민을 풀어내고자 한다.
출처 : 베이비뉴스(https://www.ibabynews.com)